이윽고 담당 간호사를 만난
나는 그녀의 안내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장면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주의사항과 함께. 수술실 문 안쪽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나는 겨우
머리만 내놓은 채
커튼에 가려져 있었고
커튼 저 너머는 온전히 의학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다. 이상하고 어색한
수술복에 카메라를 걸고
나타난 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나나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는데 무슨 얘길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가장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나나의 온몸이 들썩들썩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나의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몇 분 후면 기다리던 새로운 생명을
만난다는 생각에 터지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윽고.
"응애애!!" 하는 산성이 수술실을 가로질러
울려퍼졌고 의사는 우리에게
건강한 아이의 탄생을
알렸다. 커튼 너머로 자그마한
생명체가 의료진의 품에
쌓여 옆방 처치실로 옮겨지는 것이 보였다. 까만 머리카락의 옆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저 울음밖에 울 수가 없었다.
수고했고, 고생했다는 말을 나나에게 건넨
후 난 카메라를 들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태어난지 5분도 안된 실물 호빵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 뱃속보다 추운 곳으로 나와 입을 파르르 떨고 있는 수영이를 본 순간 대번에 드는 생각
"나나 판박이다!"
그렇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수영이는 나나를, 그것도 판박이로 빼다 박은 것이다!!
우리는 막연히 호빵이가 내 얼굴을 닮을 것이라 생각했다. 초음파로 본 얼굴도 좀 그랬고, 나를 포함한 광주 식구들이 다들 서로 닮아서, 내 쪽에서 뭔가 강한 유전자가 수영이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게 바로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수영이는 굉장한 우량아로 태어났다. 8파운드 11온즈, 즉 3.94킬로그램. 이런 아이가 자연분만으로 나올리 만무했다는 것이 결국 이렇게 드러났다. 애초에 다 제쳐두고 제왕절개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보험사가 개입하는 미국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나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엄청난 산통까지 다 겪으면서 결국 절개를 하여 제왕을 꺼내고 만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순간 사진 말고 동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고두고 나나에게 잔소리를 들어야할 나의 결정적 실수. 수영이의 첫번째 순간을 동영상으로 담았다면 길이길이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둘째부터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지만, 과연 둘째를 낳을까? ㅋㅋ
신나게 사진을 찍은 다음 간호사는 수영이를 나에게 주었다. 내가 "Can I?" 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이 여리디 여린 생명을 감히 건드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설픈 손길로 수영이를 안는 순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수영이가, 내 아들이, 내 핏줄이 내 품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나 옆으로 돌아갔다. 나나에게, 자기와 똑같은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안믿는 것이었다. 사실 이 즈음 나나는 마취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누구보다 이 환희의 순간을 즐겨 마땅한 나나가 그래서 안타까웠다.
이윽고 간호사가 수영이를 우리에게 들고 왔고 감격스런 모자 상봉의 순간이 왔다. 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지연되었지만 세상 이것보다 숭고한 순간이 있을까.
난 기쁨에 취해 계속 수영이를 안고 영어로 떠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되니까 마치 방언을 하듯이 말문이 터졌고 난 격하게 수영이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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