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호빵빵이

31주차의 호빵이는 아주 건강히 잘 자라나고 있다. 그에 따라 나나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빵빵해져간다. 나나 뱃속에서 움직움직거리는 호빵이를 보면 즐겁고 대견하지만 그런 호빵이를 배속에 품고 있어야 하는 나나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어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우리는 용감하게도 레터스를 산다고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다. 진눈깨비가 내려 길이 질척해진 탓에 빙판보다도 더 미끄러웠고 나나는 혼자서 도저히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태평양처럼 거대한 물웅덩이 해저드도 있고 해서 우리는 같은 건물의 박윙클스에나 겨우 갈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호빵이의 이름이 '수현'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오셨다. '김수현'이라. 아주아주 익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배우 김수현을 좋아라 하는 나나는 대찬성. 나도 뭔가 중성적이고 세련된 이름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기억하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름 후보 중 하나로 당당히 올라갔다.

한국에서 돌아와 호빵이를 키우고 생활하면서 우리가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먹는 것이었다. 시차적응으로 인해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게 되었다. 호빵이로 인해 입맛이 잔뜩 까다로워진 나나는 예전처럼 아무거나 못먹게 되었다. 하지만 임신한 몸으로 음식을 하는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입덧 케어할 때처럼 다시 내가 요리를 해야할 것 같다. 예전 다운받아 놓은 집밥 백선생을 다시 열어보아야겠다.

음식 중 가장 큰 문제는 쌀이었다. 한식을 좋아하는 호빵이 덕분에 과거보다 쌀을 많이 소비하게 되었는데, 한국 가기 직전에 쌀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서도 한국 장에 가서 큰 포대 쌀 사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그러다 오늘 드디어 큰맘먹고 운전해서 H-Mart에 갔다 왔다.

혼자 한국장을 보는 일은 늘 어렵고 위험천만하다. 전문가가 직접 눈으로 보고 물건을 고르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치만 오늘 사온 것들 중에 특히 괜찮은 과일들이 있어서 만족스럽다. 나나가 여기 온 이후 한국 귤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마침 제주 감귤이 거기에 있어서 냉큼 집어 왔다. 맛도 좋아서 와구와구 먹었다. 다음 주에 또 한 번 가야될 것 같다 ^^ 짜왕은 소문대로 걸작이었다. 왜 내가 한봉지만 사왔는지 땅을 치고 후회했다 ㅠㅠ

비록 돈 못 버는 남편이지만 식구들을 먹이는 의무를 조금이나마 이행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성우에 대하여

한국에 가기 전 우린 성우와 카톡 하나 주고 받지 않았다. 그런 성우와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우리의 걱정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우와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직장에서도 부지점장까지 승진했지만 성우는 여전히 성우였고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난 착하고 유머가 넘치는 성우가 처남으로서 너무 좋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성우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성우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새신랑으로서 자신의 결혼에 충실하려 하지만 그 결혼이란 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성우가 왜 '결혼'이라는, '연진'이라는 선택을 했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는 유부남이고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런 성우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맘, 어머니의 맘은 편할 리가 없었다. 우리에게 성우는 늘 특별한 친구였다. 그만의 여린 감수성과 독특한 세계는 성우를 더욱 성우답게 만들었다. 그런 성우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굳이 입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같은 유부남으로서 성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결혼 생활이란 어떤 남자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우가 처한 어려움은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르다.

선택은 온전히 성우의 몫이다. 우리는 성우의 취향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그의 결혼 생활에 옆에서 분통이 터지고 있지만, 성우 본인은 묵묵히 자신의 결혼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연진이 엄마가 앵겨준 이백만원짜리 청소기가 마음에 안들자 나나가 추천한 핸디 청소기를, 연진이의 반대를 무릅써가며 구입한 다음 룰루랄라 청소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어머니에 대하여

이번 한국행에서 큰 수확이 있다면 어머니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과거의 어머니의 경험들이 어떻게 현재의 어머니를 만들었는지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니는 정말 착한 인간성의 소유자시다.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타인에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은 늘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굴곡이었던 아버지를 나이가 드신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 챙기시는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하시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자러 들어가실 때까지 숨도 안쉬고 계속 집안일을 돌보시는 것을 보면 나는 저렇게 못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체력적으로도 안될 것이다. 몸이 너무 가벼우셔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을 전혀 귀찮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젊어 고생은 소설로 쓰면 대하 소설이고 드라마로 만들면 초대작 50편짜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셨으면 성격이 비뚤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더욱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시니 귀감이 안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참 바보스럽게도 참고 사셨다는 생각도 들고, 나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그 인내심은 높이 사고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덕목은 현재 내가 정말 결여하고 있는 덕목이다.

호빵이가 태어나면 부모로서 어머니의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 인내심, 그 부지런함을 더욱 갖추어야겠다.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실수에 대하여

미국에 도착한지도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원래 11월 27일에 도착했어야 할 일정. 12월 9일로 늦춰지고야 말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비자에 대한 나의 착각. 난 DS-2019 연장을 비자 연장인 것으로 착각했고, 이 거대한 착각은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을 만나고서야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패닉과 비자를 연장하기 위한 생쇼는 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사실 비자 기한은 비자에 쓰여진 그대로인 것이고 그 기한이 끝나면 미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건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왜 나는 그런 상식조차 없었을까? 아무 것도 모른채 짐싸고 희희낙락하며 공항에 가던 내가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내 실수로 인해 나나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주위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열흘이나 더 돌보셔야 했고, 성우는 한번 더 우리를 공항으로 실어날라야 했으며 광주의 엄마 아빠는 이런 아들을 둔 사실에 수치를 느꼈을 것이다. 나나는 이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으며 더 커진 배로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장된 기간동안 나나는 아버지의 등산복과 어머니의 부츠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효도를 했고 마침내 12월 9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는 맨 앞자리에서 다리를 모두 뻗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것들이 나의 실수를 정당화하지는 못했다.

진정한 전화위복이라면 그 이후로 모든 일정을 집착적으로 꼼꼼히 챙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휴대용 수첩을 하나 사서 모든 중요한 사안들을 적고 있고, 하루에 구글 캘린더를 십수번도 더 들어가면서 할일들과 다가올 일들을 체크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면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나나의 출산, 나의 잡마켓과 졸업 일정은 특별 관리의 대상이다.

그나저나 시차적응이 안되서 큰일이다.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갈비뼈

지금 나나의 갈비뼈가 너무 많이 아프다. 호빵이가 많이 자라서 자궁이 커지고 위로 압박해서 갈비뼈와 갈비뼈에 붙은 근육을 찢고 있는 거란다. 말 그대로 몸이 찢어지는 고통인 것이다. 하루종일 짐 푸는 작업을 하던 나나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지금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이런 고통들을 대신 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아무쪼록 갈비뼈 골절이 아니길 바란다.

여기에 나나는 시차적응이라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언제나 힘들었지만 이번 시차적응은 더더욱 힘들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연장된 탓도 있겠고 임신이라는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와중에 규칙적으로 챙겨먹어야 하는 상황이 참 힘들다. 내가 요리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나나와 호빵이를 굶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저렇게 갈비뼈가 아프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다.

이번 한국행은 정말 많은 결과물과 깨달음을 남겼다. 비자를 연장하지 않은 실수, 어머니의 극진한 배려, 엄마 아빠, 그리고 홍영이와의 만남 등등 글로 옮기고 싶은 거리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