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4일 목요일

March Madness 4

그 이후 나나와 수영이는 회복실을 잠깐 거쳐 입원실로 들어왔다.

우리가 감격에 들떠있는 동안 한 가지 간과한 것이, 그 전날 밤부터 수영이가 태어날 때까지 어머니는 집에서 잠 한 숨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제대로 카톡 업데이트도 못드렸고, 어머니는 이미 속이 까맣게 타고 계셨다.

수영이가 태어난 후 어머니께 카톡을 드려 출산 소식을 알렸고, 광주의 엄마 아빠한테도 알렸다. 어머니는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 없으셨는지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원래 보호자 한 명밖에 들어올 수 없는 회복실이었지만 어찌어찌 들어오셨고 호빵이는 할머니와도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포대기에 쌓여진 호빵이는 눈에 소독액 같은 것을 넣고 있었다.



바로 이 조막만한 생명이 앞으로 당분간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입원실로 옮겨진 뒤로 우리는 3박4일이라는 꽤 오랜 기간 병원에 머물렀다. 자연분만이라면 바로 다음날, 아님 다다음날 퇴원이었겠지만 나나는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더욱 오래 머무를 수 있었고 그렇게 해야 했다.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지만 제왕절개는 자연분만보다 훨씬 더 많은 회복시간을 필요로 한다. 수술부위는 물론이거니와 몸 전체적인 회복까지 두배, 세배의 시간을 요구한다. 

입원 기간은 수영이를 제외한 우리 모두에게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까지 포함해서 아이를 낳은 나나도, 옆에서 지켜본 나도, 심지어는 세상 밖으로 나온 수영이도 다들 기진맥진이었다.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는데 병원에서는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청력 검사, B형 간염 예방 접종 등등에 나나의 수술부위 처치가 계속 이루어졌다. 신기한 것은 간호사들이 나나에게 계속 아프지 않냐고,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나나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진통제는 필요없다고 거절했다. 절개 부위가 가장 크다는 제왕절개를 해놓고 왜 안아프겠는가. 독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나나가 안스러웠다. 

알튀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군대, 감옥과 함께 병원을 포함시켰고, 푸코도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이 작동하는 기관으로 병원을 언급한 바 있다. 나는 3박4일의 병원 생활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병원의 역할'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Birth certificate을 통해 수영이는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었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사회 보장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아동의 인권이 지상 최고인 미국 시카고 한복판에서 우리는 수영이를 건강하게 양육할 의무를 띠고 있었다. 어떤 주기로 어떤 방식으로 수영이를 먹이는지, 기저귀를 갈아주는지, 우리는 이러한 시시콜콜한 사항을 입원실 칠판에 적도록 되어 있었고 간호사는 정기적으로 이 기록들을 차트에 입력했다. 이러한 기록의 습관은 퇴원해서도 그대로 실천되었다. 사실 어떠한 주기로 수유를 하는지 기저귀를 갈아 주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병원에서 나나의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모유수유였다. 갓 태어난 생명인 수영이는 이제 탯줄의 도움 없이 영양을 섭취해야 했다. 애초부터 모유수유가 목표였던 나나는 초반에 모든 산모들이 겪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모유수유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쉽지 않았고, 기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1년간의 모유수유를 표준으로 여기는 미국 병원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에 봉착한 산모들을 위해 여러가지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lactation consultant들이었다. 이 훈련받은 전문 간호사들은 상담을 통해 모유수유의 A부터 Z까지 모든 이슈들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많은 산모들이 모유수유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고 나나도 이들의 도움을 받아 모유수유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분만 직후부터 산모의 몸에서 모유가 충분히 생산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이 기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것이 모유수유의 첫걸음. 많은 산모들이 분유수유로 돌아서는 것도 이 시기이다. 모유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분유를 먹였다가는 아이가 분유에 익숙해져 모유를 먹이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많은 미국의 병원들이, 신생아가 모유에 익숙해지도록 분유를 아예 먹이지 않는 '굶기기' 를 권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있었던 노스웨스턴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어느 정도 분유로 아이의 영양을 보충하는 것을 허락했다. 어쨌든 모유수유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나나는 수영이에게 분유를 주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배고파 보채는 수영이, 모유가 아직 준비가 안된 나나, 성공적인 모유수유라는 장기적인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이런 이슈 말고도 병원이란 곳이 애초에 유쾌한 공간은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나나와 아이의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의료진들이 입원실로 들이닥쳐서, 나나는 모자란 잠을 보충할 새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인 나라도 정신차리고 보초를 서며 도움을 주었어야 하는데, 피곤한 나머지 보조 의자에서 골아떨어질 때가 많았다. 가장 부끄러웠던 상황은, 3월 1일인가 아침에, 수영이의 주치의인 소아과 의사 Daphne Hirsh가 오전에 방문했을 때 내가 쿨쿨 자고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일어나보니 내 눈 앞에 모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러 모로 악몽같은 시츄에이션... 

이 와중에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도시락을 나르시느라 고생하셨다. 하필 갑자기 추워져서 꽃피는 춘삼월인데도 눈이 내리는 날씨였다. 아마 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미국식' 식사로 연명하느라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수영이가 태어난 저녁 멋모르고 시킨 음식을 나나가 먹고 전부 게워낸 게 아직도 생생하다. 

생명의 탄생이란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롭고 고상한 현상이다. 이렇게 태어난 수영이는 나나 침상 옆의 배시넷에서 너무나 귀여운 모습으로 생애의 첫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고귀한 생명 탄생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며칠간 우리는 의료와 관리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의료진은 수영이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루틴 속에서 피로가 가중되기도 했다. 여기서 보호자인 내가 조금만 더 나나와 수영이를 잘 케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랬다면 병원 경험이 조금은 더 유쾌한 경험으로 남았을 텐데...

퇴원하기 전날인가, 병원 전속 사진사가 들어와서 수영이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꽤 비싼 사진들이었고,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우리나, 촬영을 진행한 사진사나 너무 어설펐던 사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추억이 아닌가? 이 기념 사진을 포함하여 입원 기간동안 찍었던 사진들 몇 장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2016년 4월 8일 금요일

March Madness 3

이윽고 담당 간호사를 만난 나는 그녀의 안내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장면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주의사항과 함께. 수술실 문 안쪽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나는 겨우 머리만 내놓은 채 커튼에 가려져 있었고 커튼 저 너머는 온전히 의학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다. 이상하고 어색한 수술복에 카메라를 걸고 나타난 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나나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는데 무슨 얘길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가장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나나의 온몸이 들썩들썩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나의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몇 분 후면 기다리던 새로운 생명을 만난다는 생각에 터지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윽고.


"응애애!!" 하는 산성이 수술실을 가로질러 울려퍼졌고 의사는 우리에게 건강한 아이의 탄생을 알렸다. 커튼 너머로 자그마한 생명체가 의료진의 품에 쌓여 옆방 처치실로 옮겨지는 것이 보였다. 까만 머리카락의 옆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저 울음밖에 울 수가 없었다.


수고했고, 고생했다는 말을 나나에게 건넨 후 난 카메라를 들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태어난지 5분도 안된 실물 호빵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 뱃속보다 추운 곳으로 나와 입을 파르르 떨고 있는 수영이를 본 순간 대번에 드는 생각

"나나 판박이다!"

그렇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수영이는 나나를, 그것도 판박이로 빼다 박은 것이다!! 

우리는 막연히 호빵이가 내 얼굴을 닮을 것이라 생각했다. 초음파로 본 얼굴도 좀 그랬고, 나를 포함한 광주 식구들이 다들 서로 닮아서, 내 쪽에서 뭔가 강한 유전자가 수영이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게 바로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수영이는 굉장한 우량아로 태어났다. 8파운드 11온즈, 즉 3.94킬로그램. 이런 아이가 자연분만으로 나올리 만무했다는 것이 결국 이렇게 드러났다. 애초에 다 제쳐두고 제왕절개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보험사가 개입하는 미국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나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엄청난 산통까지 다 겪으면서 결국 절개를 하여 제왕을 꺼내고 만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순간 사진 말고 동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고두고 나나에게 잔소리를 들어야할 나의 결정적 실수. 수영이의 첫번째 순간을 동영상으로 담았다면 길이길이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둘째부터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지만, 과연 둘째를 낳을까? ㅋㅋ

신나게 사진을 찍은 다음 간호사는 수영이를 나에게 주었다. 내가 "Can I?" 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이 여리디 여린 생명을 감히 건드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설픈 손길로 수영이를 안는 순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수영이가, 내 아들이, 내 핏줄이 내 품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나 옆으로 돌아갔다. 나나에게, 자기와 똑같은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안믿는 것이었다. 사실 이 즈음 나나는 마취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누구보다 이 환희의 순간을 즐겨 마땅한 나나가 그래서 안타까웠다.

이윽고 간호사가 수영이를 우리에게 들고 왔고 감격스런 모자 상봉의 순간이 왔다. 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지연되었지만 세상 이것보다 숭고한 순간이 있을까.


난 기쁨에 취해 계속 수영이를 안고 영어로 떠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되니까 마치 방언을 하듯이 말문이 터졌고 난 격하게 수영이를 환영했다.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March Madness 2

분만실로 옮긴 이후 나나의 자궁문은 점점 열렸고 진통또한 강해졌다. 임신 초기부터 에피듀럴은 절대 맞지 않겠다고 공언한 나나였다. 거기에 나는, 그래도 진통이 참을 수 없게 되면 맞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설전은 출산 당일까지 이어졌다.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가면서 처음에는 그저 그렇던 진통이 점점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자궁문이 7cm까지 열리도록 독하게 버틴 나나였지만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3시경 나나는 드디어 에피를 맞았다.

마취과 의사를 위시한 의료진들이 들이닥치더니, 무균 상태에서 마취를 진행해야 한다며 보호자를 내보냈다. 한 40분 정도의 시간에 난 주차장에 내려가서 주차장의 구조를 면밀히 확인하고, 던킨 도넛에 가서 커피랑 도넛을 먹으려 했으나, 밤늦은 시각이라 도넛이 떨어졌음을 확인하고 커피도 단념했다. 터덜터덜 대기실로 올라와 앞에 올린 글을 쓰고 있으니 간호사가 와서 마취가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상봉한 나나는 한결 편한 얼굴이었다. 진작에 맞을걸 왜 참았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오고간 것은 당연지사였다. 사실 그 이후 나나가 감당해야 했던 더 끔찍한 진통을 생각하면 에피를 안맞는 게 미친 짓이었다. 옛날 에피가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애기들을 어떻게 낳았는지 모를 일이다.







에피를 맞은 이후 편안해진 와중에도 자궁문은 점점 열렸다. 우리 둘 다 조금씩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8시 40분쯤 내진을 했고 9.5cm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진행을 촉진하기 위해 피넛볼이라는 땅콩껍질같이 생긴 풍선을 다리 사이에 끼우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다소간 정체기가 찾아왔다. 점차 강해져야 할 진통도 답보 상태. 답답한 지경이 10시 50분 우리의 히어로 Dr. Auger가 내진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 내진에서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두 가지. 자궁문이 다 열렸다. 그리고 수영이는 뒤가 아닌 앞으로 보고 있었다. 일명 sunnyside-up. 이렇게 된 경우 난산이 되어 결국에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Great Expectation 클래스에서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당시 sunnyside-up이라는 말이 좀 웃겨서 모두 웃었는데, 그게 호빵이의 일이 될 줄이야.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힘주기를 하면서 호빵이를 아래로 내려가게 했고 Dr. Auger는 손으로 호빵이의 머리를 돌려놓으려 했다. 근데 이 호빵이 녀석은 완고했다. 그렇게 거꾸로 된 자세로 심지어 내려오지도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나가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머리 회전 시도와 수차례의 힘주기 끝에 Dr. Auger는 중대한 결단을 제안했다. 바로


제왕절개


일단 산모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고, 호빵이는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연분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이러한 설명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Dr. Auger의 어조는 침착하면서도 힘있고 강단있고 설득력이 있어서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상황이 그녀가 묘사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자연분만으로는 오늘 호빵이를 볼 수 없을 것 같고 그 전에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 같았다. 나나 나나나 모두 자연분만 외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나의 배를 열어서 호빵을 꺼낸다는 것은 또한 너무나도 큰 일이었기에.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없었다. 우리의 즉각적인 동의를 얻은 의료진은 순식간에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갑자기 더 많은 의료진들이 방으로 쇄도해 들어왔고, 나한테도 수술복을 챙겨주었다. 말그대로 수술이었다. 멘붕으로 정신을 절반쯤 놔버린 나는 다시 한 번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분만실을 떠났다. 수술 회복실에 짐을 내려놓고, 수술복을 허겁지겁 입기 시작했는데 왜 이렇게 착용이 힘든지. 버벅버벅 삽질을 하고 있는 동안 견습생으로 와 있었던 한국인 의대생이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한국말을 잘 못한다며 서툴게 인사를 하던 그 분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러는 동안 침대째로 수술실로 옮겨진 나나는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호빵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March Madness 1

수영이가 태어난지 오늘로 1달이 지났다. 이 한 달 동안의 여정은 참으로 생각지도 않은 것이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글빨이 적은 나로서는 엄두도 안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 또한 의미있는 일이겠기에, 출산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간추려본다.

바로 아래 남긴 글. 나나가 에피를 맞은 직후 남긴 글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오만가지 감정으로 뒤엉켜 있다. 생각보다 길었고 힘들었으며 고통스러웠고, 그 끝에는 환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27일. 오전부터 나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몸의 반응을 느낀다. 그리고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 마음의 준비 중 하나가 바로 '차이나타운 버블티 먹기'였다. 영문도 몰랐던 나는 어머니와 같이 집카를 빌려 차이나타운으로 향하는데, 뭔가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신 어머니는 자꾸 집에 가자고 재촉하시고, 이런 '촉'같은 것은 약에 쓸래도 없는 나는 어머니의 차이나타운 관광에 더 집중했다. 어쨌든 나나가 염원하던 버블티 두 개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중대한 출산의 서막이 올랐다. 바로

Water broke.

차 예약시간 오버해가며 겨우겨우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나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버블티고 뭐고 혼비백산이었다. 곧바로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어 9시 30분까지 triage에 입원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나는 근처 월그린을 돌아다니며 새어나오는 물이 양수가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지를 사려고 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양수였다.

양수가 터질 때 옆에 없었다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머리 속은 온통 엉망이었지만 그 와중에 우리는 병원갈 준비를 해야 했다. 난 홀푸즈에 가서 병원에서의 요기거리를 좀 더 마련해 왔고 나나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고기와 짜장을 출산전 마지막 만찬으로 먹었다. 이제 수영이를 낳기 전까지 나나는 굶어야 한다. 산모들의 여러 체험담들은 하나같이 입원직전 배터지게 먹고 가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되지는 않을 만큼 출산은 중대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으니, 흘러나오는 양수에 푸르스름한 색이 비치는 것이었다. 나나가 급히 검색해보니 태변의 징조라 한다. 이러면 태아가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보다 더 일찍 8시 30분에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 앞에서 내려, 지시대로 triage로 들어갔다. triage는 우리 둘 다 처음이 아니었다. 약 일주일 전 임당검사차 의사의 지시로 내원했을 때 갔던 곳도 이 triage였다. 심지어 병실도 그 때랑 똑같았다. 신기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며 그 때와 똑같이 나나는 옷을 갈아 입고 진통 센서와 태아 심박동 센서를 착용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번갈아 드나들며 상황을 체크했다.



양수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출산때까지 이렇게 흐를 것이라 한다. 다행히 양수의 색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나나는 곧바로 분만실로 옮겨졌고 나도 짐을 챙겨서 따라갔다. 분만실은 Great Expectations 수업 때 견학했던 대로 넓직한 방에 온갖 아기 낳는 시설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하아.. 이 곳에서 호빵이를 보겠구나 ^^ 
과연?

2016년 2월 28일 일요일

에피

3시 33분 28일 현재. 나나는 에피를 맞고 있다.

나나는 2시무렵부터 3시까지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었다. 나나에겐 에피를 맞을 권리가 있다!!

나나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있는 나의 손은 온통 나나의 손톱자국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는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나나가 남은 시간 잘 참아내길...

2016년 2월 27일 토요일

Triage

3시 30분

나나의 양수가 터짐.
어이없게도 나와 어머니는 차이나타운에 버블티를 사러 갔다 들어온 직후.

닥터에게 전화를 함. 9시 반까지 triage로 오라고.

근데 양수 색깔이 묘해서 더 서둘러 감

8시 30분 triage 도착

월욜날 한번 와봐서 너무 익숙함. 심지어 방도 163호 똑같은 방 ㅋㅋ

9시 54분 현재 다소간의 진통이 진행됨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나나 생일!

호빵이의 생일과는 별도로 2월 26일은 거룩한 나나의 탄신일! 나나가 말한 대로 이번 생일은 여러 모로 뜻깊다. 우선 한국에서 수고하러 오신 어머니와 함께여서 뜻깊었고, 두 번째로 호빵이와 함께여서 뜻깊었다. 어머니는 미역국을 필두로 마술같은 쿠킹 솜씨를 시전하여, 고이만 있었으면 썰렁했을 생일 상을 가득 채워주셨다.

2년째 스카프 선물이어서 올해는 좀 다른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내가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호빵이는 예정되어 있고. 나나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부터 이렇게 뜻깊은 생일날 아이 낳느라 수고한 나나에게 좋은 가방을 하나 떡하니 안겨주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다.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가 어머니와 같이 나가서 고른 선물이 바로...



루이비통 트와이스 크로스바디!

참 우여곡절 끝에 얻은 아이다. 

원래 얘를 염두에 두고 한국에서 오시는 어머니께 면세점에서 부탁까지 하려 했으나 나나가 별로 내켜하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포기. 호빵이도 나오고, 그래서 돈도 좀 아끼고, 역시 스카프 선물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해서 스카프를 생각했으나 갑자가 Saks에서 200달러 할인행사를 하여 생로랑백으로 방향 전환. 주문 직전까지 갔으나 품절이라는 청천벽력이!! 그래서 다시 스카프 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어머니랑 같이 에르메스에 가서 골라보는데, 미리 나나와 골라 놓은 예쁜 스카프들이 단 한 개도 없는 것이다!! 또 절망!! ㅠ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이렇게 특별한 나나의 생일을 망칠 수는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들어간 곳이 바로 루이비통. 역시 루이비통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ㅋㅋㅋ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나나를 보고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듯 흐뭇했다. 여러 모로 수고한 나나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해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 호빵이 낳고도 요긴하게 쓰길 ㅋㅋ 취직하면 더 좋은 거 사줄 꺼구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