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호빵이와 만날 수 있었다. 호빵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건강하게 나나의 자궁 벽에 꽉 붙어 있었다. 마치 황금박쥐같이 거꾸로 매달리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호빵이는 이렇게 작은 생명체로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의 첫 병원 방문은 우리에겐 또 다른 새로움이었다. 병원 자체를 미국 와서 처음 가보는 거라서 병원에 있는 내내 어리버리를 깠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나나는 연신 나를 구타하고 있다. ㅋㅋ
나나의 주치의 스캇 모제스는 정말 특이했다. 우리가 상상한 그 어떤 산부인과 의사와도 달랐다. 그는 일단 산모와 그 가족과의 관계 쌓기에 중점을 두었고 임신을 라이프 사이클의 일부로 파악하길 권했다. 우리의 히스토리를 파악하려 했고 이 임신이 우리 삶에서 가지는 의미를 알고자 했다.
병원에서 나누어준 책자에 나온 그의 이력에 보면 그는 노스웨스턴 의대에서 의료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는 일반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대학에 다시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철학자가 의술을 행하면 이렇게 된다는 느낌? 그가 갑자기 툭툭 던지는 말들, 자신의 철학, 내 전공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에 적잖이 당황하고 "어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싶었지만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테스트 숙제를 내주었다. 하나는 나나의 MaterniT21 테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carrier test였다. 내가 외골종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나에게 이 테스트를 하라고 한 모양인데, 생각해보면 나나 말대로 별 쓸데가 없는 테스트인 것 같다. 어짜피 이것이 유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재미있는 것은 마터니티21 테스트는 산모가 35세 이상이면 보험커버가 된다는 것. 현재 나나는 34세. 그런데 산모의 나이는 due date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단다. 초음파 사진으로 이리저리 판단을 하던 닥터 모제스는 놀랍게도 due date을, 우리 생각보다 일주일이 늦은 2월 27일로 잡아주었다. 바로 나나 생일 다음날. 나나가 35세 하고도 1일 되는 날이다. 하루 차이로 우리는 마터니티21테스트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닥터 모제스가 우리의 보험 적용을 위해 일부러 몇일 due date을 조작(?)한 거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모제스의 기적'이라 부르기로 했다.
산모인 나나에게도 오늘 정기 첵업은 힘든 일이었겠지만 같이 갔던 나에게도 하루 종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온갖 서류 작성, 접수원과 간호사, 닥터의 말을 알아듣고 새기기, 적절한 반응 보이기, 산모 편안하게 배려하기 등등.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별거 아닌 것 같긴 하다 ^^ 근데 이 정도 피곤이야 호빵이와의 첫 대면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초음파 사진에서 콩닥콩닥 뛰던 호빵이의 심장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나의 입덧이 신기한 게 양상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나나는 메스꺼움보다는 극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덧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경종을 울리는 느낌? 호빵이가 뱃속에서 진화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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