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3일 일요일

무모한 도전

임신 중기가 가까워오면서 점점 임신이라는 사실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호빵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성별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호빵이의 이름을 뭘로 할까를 토의했고 아직 마땅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제 나나가 육아에 대한 짤막한 글을 퍼다 주었다. 결론이 엉뚱하게 "아기를 낳자"는 식으로 난 글이라 좀 못마땅했지만 출생후 첫 수개월의 노동강도를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었다. 두 시간마다 깨워서 수유하고 수시로 하루 열 번 기저귀 갈고, 씻기고, 그 와중에 수시로 일어나 울어대고, 그 와중에 또 산모는 식사를 해야 하고, 여기에 각종 돌발상황까지. 미리 계획하고 스케줄을 짜기 좋아하는 나에게도 참 각이 안나오는 현실이었다.

생각해보면 임신 그 자체가 인생에 있어서 "무모한 도전"인 것 같다. 그런데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이 수많은 사람들도 다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거쳐 길러졌을 것 아닌가? 어짜피 인생은 그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다. 나와 나나는 이러한 도전을 통해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호빵이의 부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역시 경제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주거 문제. 요즘은 일자리는 하늘이 정해주는 거라 생각하고 운명에 몸을 맡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당장 한국에 취직이 될지 미국에 취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는 내년 이맘때 어딘기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에 앞서 어떻게라도 취직을 해야 할텐데 하는. 이것은 하나의 목표의식이기도 하지만 부담감이기도 하다.

하아... 사실 미리 생각해봤자 머리만 복잡한 일들. 오늘도 호빵이 숨소리 듣고 나나에게 순두부찌개나 잘 끓여줘야겠다. ㅋㅋ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튼살 크림과 딸랑이

나나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살 트는 것이 걱정이다. 당장 배가 간질간질하다는 나나. 그래서 며칠 전에 클라란스가 좋다는 나나 말을 듣고 클라란스 임산부 세트를 여기저기 알아보았고 이렇게 내가 서두른 덕에!! 클라란스 쿠폰을 늦지 않게 적용받고 할인가격에 클라란스 튼살 크림 세트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보너스로 토끼 모양의 아기 딸랑이가 껴 있었고, 그것을 나나가 딸랑딸랑 흔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가 처음 구입(?)한 호빵이의 장난감. 이 딸랑이를 새로 태어난 호빵이에게 흔들어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감격스러워진 것이다. 이렇게 나나 배속에 있는 호빵이는 문득문득 일상 속의 나에게 다가온다. 앞으로 장만하게될 호빵이 용품들을 살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들까? 호빵이가 내게 배시시 웃음을 지을 때 난 얼마나 행복할까? 호빵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임신에 대한 가장 큰 고정관념이자 편견은 임산부가 뱃속의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준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태교'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이 더해져 임산부들은 어느새 아이의 생성에 절대적인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짜피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할 산모들에게 이러한 짐은 실로 부당하다. 아기가 건강히 자라려면 산모가 우선 행복해야 함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까먹는다.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두 번째 검진

오늘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런 날은 나도 꿈을 꾼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꿈. 왁자지껄하고, 무슨 수련회같은 분위기에 사람들과 여러 가지 감정들을 주고 받고. 뭐 아무튼 나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전에 나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즐기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지난 번 MaterniT21 테스트 결과가 나왔는데 산모한테만 직접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자고 있는 나나를 깨울 수는 없었고 그냥 이따가 닥터 만나는데 그 때 얘기할 거라고 말해줬다. 혹시나 하는 나의 걱정을 목소리로 읽었는지 그 쪽에서는 나쁜 소식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 일단 이 테스트 결과는 좋구나. 그리고 당연히도 아이의 성별 정보가 있겠지. 드디어 오늘 딸인지 아들인지 판명나겠구나.

대충 먹고 정확히 한 블럭 떨어진 산부인과로 향했다. 이상한 엘리베이터를 잡고 병원을 찾아 들어가 접수하는 것까지 이제 모든 것이 능숙했다. 내가 또 어리버리 까기 전까지는 ㅋㅋㅋ

닥터 모제스를 만나 처음 한 일은 테스트 결과를 듣는 일이었다. 오늘은 왠지 딱딱한 느낌으로 우리를 대한 닥터 모제스는 우리에게 테스트를 받았는지를 물었고 난 오늘 오전에 전화 받은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실제로 그의 파일에 테스트 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일단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안심했다. 우리 호빵이는 건강한 아이인 모양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 아이의 성별. 성별을 알고 싶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당연히 알고 싶다고 했다. Are you sure?하면서 반문하는 모제스. 당연하지. 우리는 둘다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거든. ㅋㅋㅋ

드디어 moment of truth. 난 딸이었음 좋겠고 나나는 아들이었음 좋겠다고 했다. 지체없이 모제스 입에서 떨어진 소리. It's a boy!

그랬다. 호빵이는 보이였다. 어제부터 우리는 호빵이를 호빵맨으로 부르고 호빵맨 노래도 부르면서 놀았는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호빵이는 'man'이었다.

나나는 기뻐했고 나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딸을 간절히 바랐던 나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오늘 발표 이전에 우리는 다 알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었다. 모든 지표들이 다 아들을 가리키고 있었고, 심지어는 오늘 오전 나나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나나가 꿈속에서 '남자' 아이들과 물총을 쏘고 과일을 던지며 놀았단다. '물총놀이' 이 얼마나 상징적인가. 0.1 프로의 희망도 갖지 말라는, 딸은 꿈도 꾸지 말라는 하늘의 신호? ㅋㅋ

어쨌든 뭐 그다지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았던 아들 판정. 그렇지만 이제 호빵이가 아들인 건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나나의 배를 무슨 미니 초음파기 같은 걸로 더듬어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근데 한참을 초음파기로 찾아도 뭔가 잘 안 찾아지는 느낌. 그래서 포기하고 즉시 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는 달리 복부 초음파였다. 그만큼 호빵이가 많이 자란 것이다. 오늘도 호빵이 아빠는 어리버리. "니가 불을 담당해"라고 하는 닥터 모제스의 말뜻을 못알아듣고 그냥 형광등 스위치 가서 딱 서버리는 저 담대함 ㅋㅋㅋ

초음파 헤드를 대자마자 호빵이는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커 있는 호빵이. 무사히 잘 자라고 있는 호빵이한테 고맙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호빵이는 팔다리, 발가락 손가락까지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얼굴도 물론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대놓고 아빠를 닮은 것이 초음파로 확인되었다!! 일단 둥글게 큰 머리와 땡그란 두 눈, 툭 나온 주둥이까지. 정말 누가봐도 내 아들이라는 느낌. 나나한테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닮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나를 닮았다고 하니까 닥터 모제스 왈. "아냐, 아빠보다 훨씬 귀여운걸!"




저번에도 느낀거지만 이 산부인과의 초음파 기계는 참 후지다. 이렇게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출력되어 나오는 그림은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어쨌든 이것이 오늘 얻은 그림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다. 20주에 정밀 초음파를 통해서 호빵이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호빵이의 성별을 확인하자마자 우리가 한 일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 우선 영어 이름부터. 이제 생각했던 이름의 범위를 절반으로 좁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자애 이름은 너무 뻔한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 우리 호빵이는 무슨 이름을 갖고 태어나게 될까? 이름을 빨리 지어주고 싶다.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도 쿨한 영어 이름이어야 한다. 

12주를 향해 가고 있으니 이제 나나의 입덧도 좀 좋아졌음 좋겠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다고 하는데 구토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 

나나와, 그리고 호빵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2015년 8월 10일 월요일

Job

이렇게 호빵이 어머님께서 글을 남기셨으나 아빠인 내가 가만 있을 순 없다 ㅋㅋ

오늘은 오랜만에 대학원생 동료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1년차부터 동문수학했던 타다시가 (얄밉게도 ^^) 나보다 먼저 취직을 하여 졸업을 하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뉴욕주 빙햄턴 대학의 1년짜리 포닥으로. 그 힘들다는 논문도 디펜스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자의 여유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저런 날이 올까 싶은 생각.

작년에 TA를 같이 했던 코벨도 뒤늦게 테녀트랙자리로 가게 되었다. 잡마켓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갈 사람은 어떻게도 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실력도 있는 티칭도 잘 하는 친구여서 어디든 갈 거란 생각을 했는데 잡마켓이 닫히기 직전에 골인에 성공하였다. 직장이 무려 몬테레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여행갔을 때 우리가 사랑에 빠졌던 아름다운 도시 몬테레이로 이사를 간다니 부럽기만 하다.

이제 호빵이가 나오면 세 식구. 내 어깨는 당연히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무슨 직장이라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올해 나의 잡서치는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특히 내가 아이 갖는 것을 차일피일 미룬 데에는 내 불안정한 지위가 가장 컸다. 졸업은 계속 늦춰지고 잡은 까마득하고, 땡전한푼 못버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렇지만 이제 새로 태어날 우리 호빵이로 인해 나는 열심히 살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나나 뱃속에 있는 호빵이에게 벌써부터 고맙다. 그래. 더 열심히 논문 쓰고 커버레터를 써서 내년에는 오늘 환송한 친구들이 부럽지 않는 내가 되도록 해야겠다.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내가 아빠가 될 거라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직 first trimester가 지나지 않은 것도 있고 조금씩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지만 이런 소식을 알릴 때가 오면 너무 당당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것 같다. 뭔가 든든한 느낌? 좋은 느낌이 든다.

내일 병원 가려면 일찍 자두어야겠다. ㅋ

2015년 8월 9일 일요일

처음 써보는 글

오늘 성운씨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학교 모임에 가고 반공기 맛나게 먹고났더니 그 덕분인지 앉을 기력이 생겨서^^ 처음으로 몇 자 적어본다. 우리 호빵이는 오늘로 12주 채웠고. 초음파 기준으로는 11주. 아 이거 딱 일주일 차이나니까 매번 어떤걸로 말해야 할지 헷갈린다. 지루하고도 힘든 입덧은 아직 끝이 보인다고는 못하겠지만 ㅠㅠ 그래도 반환점은 돌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 내리막길이구나 싶은 생각은 든다. 그러나 아직도 맘만 먹으면 어느 순간이라도 즉시 토할 수 있는 상태... 에휴 그래도 매우 열심히, 성실하게 케어해주는 아빠 덕분에 엄마는 비교적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단다 호빵아^^ 아빠의 이 성실함, 이 끈기, 이 꾸준함을 꼭 닮아서 나오렴 ㅋㅋㅋㅋ 내일은 두번째로 산부인과 가는 날. 아마 초음파로 우리 호빵이의 좀더 자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마터닛21 테스트 결과도 나올 듯. 별 이상없겠지? 빨리 입덧이 나아져서 사람답게 매일 세수도 좀 하고 맛난 김치볶음밥도 해서 성운씨의 은혜에 보답도 좀 하고 ㅋ 예쁜 호빵이 옷도 사러 다니고 할 수 있었음 좋겠다. 아... 그런 날이 과연 오긴 올까 싶다만은 ㅎㅎㅎ

월남쌈

 나나가 임신 초기부터 먹고싶어 했던 월남쌈을 드디어 먹게 되었다!

사실 월남쌈은 만들기가 귀찮아서 좀 기피했었다. 나나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도 주저주저하며 홀푸즈의 월남쌈을 대신 사주곤 했었다. 불로 요리하는 것은 적지만 재료 다듬기가 너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걸 준비하는 동안 헝거 어택이 찾아오곤 했었다.

그렇지만 입덧하는 나나가 먹고 싶은 거라면 지옥까지 마다하랴. 새우랑 간고기 야무지게 사서 어제 밤 냉장고에 차곡차곡 저장해놓았다. 그리고 오늘 낮에 드디어!! 두둥!! 맛난 월남쌈을 먹는데 성공!!




역시 월남쌈은 비주얼로 먹고 들어가는 음식이다.

결혼전 나나랑 월남쌈 먹으면서 데이트 다닐 때 라이스 페이퍼로 쌈 못싼다며 혼났던 기억이 ;;;; 지금도 역시 서툴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위안을 해야겠지? ^^;;; 오늘도 먹다가 터지고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호빵이 아빠는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한가.

나나는 랩 안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야채와 파인애플의 맛이 월남쌈의 핵심이라고 하겠지만 난 무엇보다 저 두툼한 면과 고기가 어우러지는 육식의 느낌이 빠지면 섭섭하다.

아무튼 배불리 먹고 남은 재료는 마저 라이스페이퍼로 싸서 엑스트라 끼니로 만들어 두었다. 재료가 남았기에 월남쌈 한 번 더!!를 외쳐본다.

어제 홍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특유의 어눌하고 느린 모노톤 목소리로 최상급의 기쁨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라 반갑기도 했지만 기쁜 소식을 나누려니 더욱 반가운 느낌. 그래. 너에게도 조카가 생기는구나. 태리에게는 사촌이구나.

오늘 장모님 생신이라 장모님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장모님이 성우에게도 소식을 알리셨다는 걸 알았다. 식사를 하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을 성우의 표정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의 두 동생까지 호빵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호빵이에게는 태어나자마자부터 만인의 사랑을 받게 하고 싶다. 적어도 양쪽 부모님과 삼촌들에게는 사랑을 아쉬움없이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호빵아! ^^




2015년 8월 7일 금요일

호빵아 도와줘!

오늘 나나가 세 번을 토했다. 아마도 이것이 입덧의 종착역인 폭풍 토덧?

점심때는 콩나물국을 끓였고 저녁때는 계란찜을 해서 먹였지만 그 대부분이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먹질 못하면 몸도 힘들어질텐데. 먹질 못해서 큰일이다.

할 수 없는 요리가 별로 없는 지금의 내가 참 한심스럽다.

호빵아 좀만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