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두 번째 검진

오늘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런 날은 나도 꿈을 꾼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꿈. 왁자지껄하고, 무슨 수련회같은 분위기에 사람들과 여러 가지 감정들을 주고 받고. 뭐 아무튼 나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전에 나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즐기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지난 번 MaterniT21 테스트 결과가 나왔는데 산모한테만 직접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자고 있는 나나를 깨울 수는 없었고 그냥 이따가 닥터 만나는데 그 때 얘기할 거라고 말해줬다. 혹시나 하는 나의 걱정을 목소리로 읽었는지 그 쪽에서는 나쁜 소식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 일단 이 테스트 결과는 좋구나. 그리고 당연히도 아이의 성별 정보가 있겠지. 드디어 오늘 딸인지 아들인지 판명나겠구나.

대충 먹고 정확히 한 블럭 떨어진 산부인과로 향했다. 이상한 엘리베이터를 잡고 병원을 찾아 들어가 접수하는 것까지 이제 모든 것이 능숙했다. 내가 또 어리버리 까기 전까지는 ㅋㅋㅋ

닥터 모제스를 만나 처음 한 일은 테스트 결과를 듣는 일이었다. 오늘은 왠지 딱딱한 느낌으로 우리를 대한 닥터 모제스는 우리에게 테스트를 받았는지를 물었고 난 오늘 오전에 전화 받은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실제로 그의 파일에 테스트 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일단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안심했다. 우리 호빵이는 건강한 아이인 모양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 아이의 성별. 성별을 알고 싶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당연히 알고 싶다고 했다. Are you sure?하면서 반문하는 모제스. 당연하지. 우리는 둘다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거든. ㅋㅋㅋ

드디어 moment of truth. 난 딸이었음 좋겠고 나나는 아들이었음 좋겠다고 했다. 지체없이 모제스 입에서 떨어진 소리. It's a boy!

그랬다. 호빵이는 보이였다. 어제부터 우리는 호빵이를 호빵맨으로 부르고 호빵맨 노래도 부르면서 놀았는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호빵이는 'man'이었다.

나나는 기뻐했고 나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딸을 간절히 바랐던 나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오늘 발표 이전에 우리는 다 알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었다. 모든 지표들이 다 아들을 가리키고 있었고, 심지어는 오늘 오전 나나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나나가 꿈속에서 '남자' 아이들과 물총을 쏘고 과일을 던지며 놀았단다. '물총놀이' 이 얼마나 상징적인가. 0.1 프로의 희망도 갖지 말라는, 딸은 꿈도 꾸지 말라는 하늘의 신호? ㅋㅋ

어쨌든 뭐 그다지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았던 아들 판정. 그렇지만 이제 호빵이가 아들인 건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나나의 배를 무슨 미니 초음파기 같은 걸로 더듬어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근데 한참을 초음파기로 찾아도 뭔가 잘 안 찾아지는 느낌. 그래서 포기하고 즉시 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는 달리 복부 초음파였다. 그만큼 호빵이가 많이 자란 것이다. 오늘도 호빵이 아빠는 어리버리. "니가 불을 담당해"라고 하는 닥터 모제스의 말뜻을 못알아듣고 그냥 형광등 스위치 가서 딱 서버리는 저 담대함 ㅋㅋㅋ

초음파 헤드를 대자마자 호빵이는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커 있는 호빵이. 무사히 잘 자라고 있는 호빵이한테 고맙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호빵이는 팔다리, 발가락 손가락까지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얼굴도 물론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대놓고 아빠를 닮은 것이 초음파로 확인되었다!! 일단 둥글게 큰 머리와 땡그란 두 눈, 툭 나온 주둥이까지. 정말 누가봐도 내 아들이라는 느낌. 나나한테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닮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나를 닮았다고 하니까 닥터 모제스 왈. "아냐, 아빠보다 훨씬 귀여운걸!"




저번에도 느낀거지만 이 산부인과의 초음파 기계는 참 후지다. 이렇게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출력되어 나오는 그림은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어쨌든 이것이 오늘 얻은 그림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다. 20주에 정밀 초음파를 통해서 호빵이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호빵이의 성별을 확인하자마자 우리가 한 일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 우선 영어 이름부터. 이제 생각했던 이름의 범위를 절반으로 좁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자애 이름은 너무 뻔한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 우리 호빵이는 무슨 이름을 갖고 태어나게 될까? 이름을 빨리 지어주고 싶다.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도 쿨한 영어 이름이어야 한다. 

12주를 향해 가고 있으니 이제 나나의 입덧도 좀 좋아졌음 좋겠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다고 하는데 구토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 

나나와, 그리고 호빵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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